의료기관 진료비 미수채권은 3년 넘으면 받기 어려워

스님이었다. 연배도 있으시고 언제나 얼굴가득 웃음도 많으신 환자였다. 구강상태가 오랫동안 방치한 탓인지 좋지 않았다. 발치 후 임플란트 식립이 필요했다. 비용이 좀 많다보니 좀 부담스러워해 진료비 분납을 요청해 왔다. 진료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고, 무엇보다 시급하게 치료가 필요한 상태여서 진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발치도 선금이라며 선뜻 백만원을 수납해 주었다.

진료과정마다 수납시기를 알리고 대략적인 치료계획서를 작성, 사인도 받았다. 진료도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예약도 잘 지켰다. 수납시기가 되어 수납을 안내했을 때 환자는 카드 발급 신청을 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수납이 될 때까지 진료를 중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믿고 계획대로 진료는 진행되었다.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며칠 뒤 환자는 주소지가 불분명하여 카드가 발급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현금으로 수납하겠으니 며칠만 기다려 달라는 변명으로 수납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래도 종교인인데 한번 믿어달라는 말도 곁들였다.

보철물이 다 완성되어 수납을 해주셔야 한다고 여러 번 설명했다. 수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보철물 장착이 어렵다는 내용도 전달했다. 천만원이 넘는 진료비 중 처음 백만원 수납 뒤 계속 미루고만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추후 수납이 안 되면 장착이 어렵다고 거듭 수납을 종용했다. 진료비가 너무 많다며 조금 할인을 해주면 수납을 하겠다고 했다. 미수금으로 남아 소액재판을 하면 그 비용이 그 비용인지라 조금 할인해 줬다. 현금 3백만원을 수납하시면서 나머지는 수일 내 현금으로 결제하겠다고 했다. 3백만원을 수납하고 또 완전히 장착할 때 수납해 주시겠다고 하는데 보철물 장착을 미룰 수도 없어 임시장착을 했다.
 
그리고 그 환자는 다신 내원하지 않았다. 백일기도 들어가야 한다며 기도가 끝나면 갈 테니 전화하지 말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렀다. 치과에선 월단위로 전화를 걸고 문자도 남겼다. 그때마다 보철물이 잘 안 맞는 것 같아 불편하다, 시간을 내기 어렵다, 일부는 빠졌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 다음부턴 전화도 잘 받지 않았다. 수납관련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참고 또 참다 원칙대로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환자는 진료도 마무리 안 해 주고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엄청 화를 내고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전화해도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고 내용증명을 보내도 돈이 없으니 진료비를 낼 수 없다고 막무가내였다. 어쩔 수 없어 소액재판을 신청했다.

그러나 진료비 수납 소멸시효는 3년이다. 소멸시효가 지났으니 미납금을 갚을 이유가 없다는 이의신청서가 왔다. 지속적으로 문자와 전화를 시도했고 보철물이 완전히 장착되지 않았음을 지속적으로 고지한바 진료가 끝났다고 보기 어렵고 내원을 고지했다는 사실도 피력했다. 법원은 이행명령을 내렸다. 이번엔 재산을 찾아 가처분신청을 해야 하는데 소속된 절을 찾기가 어려웠다.

일선 치과마다 이런 비슷한 일은 한 두 번씩 경험이 있을 것이다. 미수금은 단순히 받기 어렵다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그 스님은 앞으로도 우리 치과를 내원하기 어려울 터 지속적인 검진도 받기 어렵게 되었다. 치과입장에선 돈도 못 받고 환자도 놓친 셈이 되고 말았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돈이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 있다. 과연 그럴까. 최소한 그 스님은  자신의 인상과 직업을 이용하여 처음부터 진료비를 수납하지 않으려는 의도는 없었을까.

진료비도 환자와의 계약이다. 그 계약을 소홀히 했다면 그 책임은 치과에게도 있다. 미수금과 소액재판을 신청하는 수수료, 그 과정을 진행하는 기회비용까지 적잖은 돈을 손해 봤다. 선한 의도가 꼭 좋은 결과만은 가져오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계약관계를 ‘인정’으로 소홀히 하고 양심에 호소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좋은 계약관계는 처음부터 서면으로 명시하고, 그 명시된 사항은 그 어떤 이유로도 지켜져야 한다. 치료계획서에 사인까지 받아놓고 안이하게 환자를 믿었던 책임은 무거웠다.

지속적으로 환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며 행여 서로 불편해질까 걱정스러움에 많은 시간을 끌었던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의료기관의 진료비 채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발생한다. 이번 기회에 발생한 미수금은 일정기간을 정하여 좀 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함을 배우고 연락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미리 내용증명 발송하는 게 옳았다.

물론 그전에 진료비 선납을 체계화 시킬 필요가 있다. 진료 끝나면 주겠다, 왜 믿지를 못하느냐는 등 많은 환자의 항변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환자들에게 진료비가 선납되어야 할 원칙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대학병원 진료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6개월 후 예약하는 검사비용까지 수납해야 예약이 된다. 상담때부터 진료비 수납의 원칙을 인식시켜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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