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의료기기 수리업무 준수사항’ 공문 발송
‘주요부품 허가받은 동일사, 동일부품 교체’ 원칙 세워
수리업계 “제조·수입업체에만 편향된 잘못된 지침” 성토

식약처 의료기기관리과가 지난 7월경 ‘의료기기 수리업무 준수사항 알림’ 제하의 공문을 의산협을 비롯한 5개 의료기기단체에 발송했다. 해당 공문에는 수리업체가 의료기기를 수리할 때 지켜야 할 원칙들이 정리되어 있다.

문제는 이 원칙 대부분이 수리업체보다 제조·수입업자에게 유리하게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식약처는 공문과 함께 발송한 세부지침을 통해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부품은 반드시 허가(인증)받은 동일사(社), 동일부품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세우고, “수리업체는 제품의 안전한 수리와 불법 변·개조 방지를 위해 수리업무에 필요한 사항을 제조·수입업자로부터 미리 확인 후 수리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실제 수리 현장선 정품보다 호환이 되는 다른 부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부품을 사용해도 대부분의 경우 안전성과 유효성에 큰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치과 입장서도 수리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서로 만족스러운 거래가 이뤄져왔다. 이에 식약처의 이번 조치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지침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랜 경력의 한 수리업자는 “요즘엔 굳이 정품이 아니라도 호환이 가능한 부품이 정품과 거의 차이 나지 않는 수준으로 많이 공급된다”며 “수리경력이 수십 년에 달하는 업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수리품질 자체도 믿을 만하다”고 피력했다.

또 “치과 입장에서도 비싼 비용을 들여 정품 수리를 고집하는 것보단, 호환이 가능한 다른 부품으로 저렴하게 수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며 “이는 선택의 영역이지, 수리업 품질관리를 위해 강제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수리업체 관계자 또한 “이는 제조·수입업체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잘못된 정책”이라며 “영세한 수리업체들은 다 죽으라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와 함께 식약처는 수리업자가 제조·수입업자에게 수리에 필요한 부품과 정보를 요청할 경우 △수리업체명, 주소, 전화번호 등 연락처 △해당 의료기기 허가번호, 품목명, 모델명, 제조번호와 제조연월 △고장 및 수리하고자 하는 내용 △상호, 주소 등 수리를 의뢰한 사용자 정보 등을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제조·수입업자가 이 같은 요청을 받았을 경우 제품이 안전하게 수리될 수 있도록 수리업자에게 필요한 부품과 정보 등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지만, 해당 부품이나 정보 등을 제공할 수 없는 경우 그 사유만 수리업자에게 통보하면 된다.

이로써 수리업자들이 수리의뢰를 받았을 때, 해당 제품의 제조·수입업자들의 협조 없이는 제대로 된 수리업이 불가능해졌다. 제조·수입사들에게 수리업을 허락받으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신규 제품을 판매해야 하는 제조·수입업체 입장선 ‘수리’ 자체가 달갑지 않은 일이다. 협조를 거부할 수 있는 단서조항까지 주어진 이상, 사실상 공식 A/S 센터 이외의 일반 수리업체는 이들의 협조를 얻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식약처선 제조·수입업체에 사전 확인절차를 밟는 과정서 의뢰자(치과)의 상호나 주소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했다. 식약처 준수사항을 지키려면 거래처를 빼앗길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사항에 대해 치과계 대부분의 수리업체들이 아예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약처는 공문 발송 당시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의료기기정보기술센터, 대한의료기기판매협회, 대한의공협회 등 5개 의료기기 관련단체들에게만 이 같은 공문을 발송했다. 본지 확인 결과, 치산협은 해당 공문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문 하단에 기재된 수신자 목록. 의산협을 비롯한 5개 단체에 발송됐지만, 치산협은 누락되어 있다.

치과의료기기 또한 의료기기법 적용대상이며, 이 같은 중요한 지침에 대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공문발송 대상에서 치산협을 누락시킨 것은 명백한 식약처의 행정처리 실수로 보인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한 수리업체 관계자는 “식약처도 문제지만, 치산협이 어떻게 회무를 했기에 이처럼 중요한 사항을 전달받지 못했는지도 의문”이라며 “대부분의 수리업체들이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또 “지금이라도 사례별 세부 적용방침 등을 확인해 회원사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며 “회원사들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바로잡기 위한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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