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에 대한 비난보단 장점 얘기해주는 게 직원을 변화시켜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투르니에는 단언했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며, 그와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말이다. 우정은 예찬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투르니에의 설명에 따르면 현실세계는 본래부터 천연색이 아니라 흑백, 다시 말해 근본적으로 무채색이다. 그 현실에 색깔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의 눈이고 예찬이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나 그대를 예찬했더니 그대는 백배나 많은 것을 돌려주었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

굳이 투르니에의 예찬론이 아니어도 한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칭찬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미디어서 보여주기도 했다. 세상은 불완전하며 인간 역시 한계에 갇힌 존재다. 그 둘을 보완하고 연결해 주는 것이 바로 예찬인 것이다.

경영은 근본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모여 소통하며 목적을 이루는 과정이다. 내가 완벽하지 않은데 타인에게 완벽을 기대하는 건 모순이다.

그러나 조직에서 서로를 예찬하는 일은 보기 드물다. 상하관계서나 동료관계서 서로 경쟁관계다 보니 의견의 빈틈을 찾기 바쁘고 실수라도 할라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격하기 바쁘다. 아닌 것 같은 얼굴을 하고도 뒤에서 뒷담화하는 모습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비판보다 예찬 한마디가 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서로의 장점보다 약점에 집중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사람이 많을수록 그런 예는 빈번하여 결국 일을 그만두는 일도 발생하곤 한다. 가뜩이나 좋은 인재를 구하기 어려운데 그러한 문제로 퇴사까지 고려하는 예가 많은 것은 비극이다.

실수가 초래하는 비용은 크다. 그 비용이 크면 클수록 엄중한 책임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실수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상기하고 똑같은 실수가 일어나지 않게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소수민족인지 내 기억으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머릿속에 오래 각인되어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 부족은 부족 중 한명이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했을 때 벌을 주는 방법이 독특하다. 잘못한 사람을 가운데 세워놓고 전 부족민이 모인다. 어린아이까지 다 모여 전 부족민이 서로 손을 잡고 돌아가면서 잘못한 부족민의 장점만 이야기 한다.
자신이 그와 경험했던 경험 중 좋았던 것이나 잘하는 일만 이야기 한다. 약점은 단 한 가지도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장점이 많으면 며칠이 걸려도 끝없이 모두 얘기한다. 그리하면 잘못한 사람도 자신의 장점을 알게 되고 다른 부족민들도 그의 약점은 어느새 잊고 장점만을 바라보게 된다. 그 이후 서로 자연스럽게 다시 부족민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노래를 부르며 의식을 끝낸다. 실수하거나 잘못한 부족민들은 얘기되어진 장점으로 삶을 더욱 아름답게 일구어 가는 모티브가 된다.

부족민의 의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가짜뉴스까지 만들어 공격하는 지금의 세태와는 완전 차원이 다르다. 나라면 어떨까, 우리조직이라면 어찌할까.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비판에 익숙해져서 진실은 사라지고 부풀려지고 왜곡된 것이 사실인 것처럼  공격한다고 생각해봐라.
타인을 이야기할 때는 여기저기 들어서 짜깁기한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그 타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또한 비판을 가하기 전 그 비판의 강도가 타당한지도 검토해야 한다.

빈말이라도 칭찬이 듣기 좋은 법이다. 결국 사람을 바꾸고 함께 소통하는 지름길은 비난보다는 칭찬이다. 조직은 서로 힘겨운 삶을 일구어 나가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다. 서로를 이해하는 폭을 넓히고 서로의 장점을 먼저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힘겨운 삶을 타인도 비슷한 사연으로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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